서울고등학교 제10회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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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심천보 동문이 상록수 제8권 (2011년1월 발행, 사단법인 심훈 상록수 기념사업회 발간)에 

기고한 글인데  전재하여 소개합니다.     - 편집자  - 

 

 

 

 

 

내 고향 당진, 부곡리 상록수 고향으로!   

 

                    

 

                                         심천보 장로 (심재영님의 장남)

 

 

 

 

 

지난번 교회 창립기념예배의 제목이 “우리는 죽어서 어떤 발자취를 후세에 남길 것인가?” 였는데 40분의 긴 설교였지만 결론은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기를 노력해서 후세를 밝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설교를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고희의 길을 넘기고 귀향의 길을 생각하는 나에게는 특별히 가슴을 울리고 흘러간 70의 세월을 돌아보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좀더 훌륭하게, 값있게 살아서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남은 날들이 될 것을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귀향을 생각하며, 나는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움으로 내 가슴이 차있는지 모릅니다

 

    나를 기다리는 어머님이 계십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환영해주는 일가친척, 학교 동창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랑스런 조상들이 걸었던 그 부속리의 오솔길을 다시 걸으며 심훈, 심명섭, 박동혁, 채영신이 걸었던 그 헌신의 길, 그 숭고한 발자취를 따르면서 상록수의 정신이 다시 살아 세상을 밝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나머지 인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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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고향에는 필경사 기념관, 상록수 교회, 상록국민학교, 상록탑, 상록수공원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자랑입니까. 그리고 나는 박동혁의 실제인물 심재영 옹(부친)이 평생사시던 그 집, 심훈 종조부께서 2년가까이 사시면서 사랑방에서 직녀성, 영원의 미소를 쓰셨던 그 집, 그리고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으로 돌아갑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까.

 

   이제 이 집에 살면서 지난 50여년 고향을 지키고 상록수 운동을 계속 하면서 박동혁이 시작한 그 농촌계몽운동을 계속해온 여러분과 교제하면서 배우면서 뒤에서 도우면서 그 운동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까 생각해 봅니다.

 

   1960년대 이후 상록수정신이 계속 불타 오르기를 염원하면서 혼신의 노력을 해온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경의를 표합니다.

 

 

 

 

   상록수 기념 사업회에서 발간된 상록수 제7회를 읽고 얼마나 많은 분들의 노력과 수고의 결실로 오늘까지 상록수 정신이 살아서 숨쉬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김형환 장로님, 차정남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정계훈, 안승환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너무나 수없이 많은 분들께 감사가 돌아가야 되겠지만 이 분들은 제가 몇 년동안 적으나마 교제의 시간을 가진 분들로써 여기에 이름을 올립니다.

 

   훌륭한 역사는 거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고 뼈를 깍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새 역사의 장이 열린다고 했습니다. 지난 50년 한국의 역사를 보면, 분명히 6.25의 참상에서 현재의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 성장은 새 역사의 창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 경이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린 많은 사람들과 많은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상록수 정신으로 태어난 새마을운동 4H클럽 국민재건운동 등이 새 역사 창조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론을 너무도 당연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20여년 전 한국일보 여론조사에서 상록수가 지난 100년 동안 쓰여진 소설 중에서 가장 한국의 정신문화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친 첫째의 소설로 뽑혔던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피를 찍어 써 내려간 것 같다는 상록수, 일제의 강점 아래서 독립과 농촌계몽운동을 부르짖어, 해방 후에도 6.25 후에도 한국정신문화의 바탕을 이루어온 상록수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난 역사 속의 상록수를 논하기 보다 앞으로 이루어져갈 새 역사 속의 상록수를 써나가야 되겠습니다.

 

    사람들은 지금이 더 상록수정신이 필요한 때라고 말합니다. 경제 성장은 이루었으나, 정신성장은 이루지 못했다는 걱정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떤 신문의 논설에서 한국은 망가진 정신의 사회라는 표현을 읽고 한편 실망도 되고 한편 걱정도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인간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해지고 기름진 음식을 먹을수록 정신적, 도덕적으로는 쇠퇴하고 타락의 길을 걷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아마도 세세로 한탄해온 인류들의 영원한 숙제이고 상록수 정신이 해결해야 될 우리에게 지워진 미래의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더 빛이 필요한 것처럼, 아마도 지금 이 시기는 상록수 정신 운동, 새마을 정신 운동이 이 사회를 다시 한번 비추어 새 역사를 이루어갈 때가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첫 번째 그날은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왔습니다. 그러나 상록수 정신을 통하여, 튼튼한 농촌, 건강한 사회 민족정신의 부흥을 이루고자 한 두 번째 그 날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현재 상록수 운동을 하고 있는 일꾼들에 지워진 무거운 짐인지 모릅니다. 꿈의 실현은 꿈을 꾸는 자들에게만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지난 70년동안 상록수의 얼을 가슴에 그 꿈을 안고 한국 방방곡곡에서 농촌부흥을 통한 조국근대화에 헌신하려는 많은 선각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후의 역사를 이어갈 젊은 상록수들을 일으켜야 됩니다.

 

    이일에 앞장서서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김형환 장로님, 차정남 목사님께 다시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부곡 상록수교회는 이제 제 믿음의 안식처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우리 부곡리집, 바깥마당에서도 안뜰마당에서도 상록수 교회의 십자가가 높이 보입니다.

 

     밤에는 빨간 십자가가 되어 우리집을 내려다 보며 우리집을 보호해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십자가를 볼 적마다 제 마음이 얼마나 흐믓하고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집안에 다시 임하여 상록수 역사의 뒤를 이어갈 훌륭한 인간, 큰 일꾼을 일으켜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제가 부곡리 본가로 귀향한다는 것과 이 십자가가 크게 관련이 있었기에 상록수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제가 10살이 되던 추운 겨울밤, 저는 처음으로 종로할머니, 권유희 권사님(심명섭 목사 부인)의 손에 잡혀 필경사 뒷 방으로 예배를 보러 갔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1950 6.25가 나서 심명섭 목사님(심훈의 형님)이 인민군에 납치되고 생사를 모르는 중, 피난 생활을 하시면서 부곡리에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하늘 나라를 바라보는 세상이 넘보지 못할 꿈의 여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 작은 모임이 60년을 지나면서, 많은 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지금의 상록수 교회로 우뚝 섰습니다. 앞으로 상록수 교회가 더욱 부흥하여 많은 젊은이들이 예수님도 배우고 상록수의 일도 배우는 믿음의 전당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그 대열에 참석하여 같이 기도하는 교인이 되겠습니다.

 

'과연 나는 어떤 발자취를 후세에 남길 것인가다시 생각해봅니다.

 

 

 

 

     이제 앞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마음이 초조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붙들어 봅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아니 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이라도 그날이 오기를 외치던 심훈 할아버지의 그 날이 오게 하기를 위하여 또한 시골 농민의 삶과 정신을 계몽하기를 힘쓰며 야학과 공동경작회를 세웠던 심재영 아버님의 뜻을 받들고 이어가기를 위하여, 지금까지 수고해온 많은 독지가들의 대열에 나도 같이 서서 헌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해 봅니다

 

 

 

 

    45년의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을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늘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의지합니다. 마지막 인생의 발걸음을 띠울 때에 올바른 삷과 죽음의 길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귀향의 길이 기쁨으로 열릴 수 있도록, 상록수 기념사업에 힘쓰신 분들, 상록수 교회를 위하여 노력하신 분들, 당진 부곡리 고향을 지켜주신 분들, 그리고 시골 부곡리 집을 지켜주신 어머님, 형제, 자매분들께 다시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글을 맺습니다.

 

    선조들이 비치고 간 찬란한 빛을 가리지 않는 후손이 될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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